안정제2007. 4. 15. 18:58
S.O.S; Story of S


2.xx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바니쉬로 반짝이는 책상의 주름같은 무늬를 찬찬히 세었다. 잘려진 나무의 단면은 마치 사막의 굴곡 같기도 했다. 사하라 사막에 간 이 아이의 아버지. 이 아이는 엄마와 함께 3명의 동생과 산다. 얘 아빠는 엄마와 이혼 후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산다. 엄마는 싫어. 아빠가 사하라 사막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길거라고 자신을 세뇌하듯 그 말을 되 읊곤 했다. 아빠 여자친구가 널 반길 거 같냐, 아서라 얘야. 속으로만 묻어두고 밖으론 꺼내지 못한 말이었다. 그의 아빠는 군인이다.

그의 말로 인하면 그의 어머니는 그가 남자를 사귄다는 사실 보다는 그에게 남자건 여자건 ‘누군가’를 ‘사귀고’있다는 사실에 질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두 살이나 어린 애인이 있다. 어느 날, 그가 해사한 얼굴로, 까르륵대는 것 같은 말투로 내게 종종종 다가와, 나 애인이 생겼어. 놀라지마. 남자앤데, 나보다 두 살 어려. 어때? 하고 할 때. 거짓말 안하고,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를 징- 하게 압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심한 말투로. 이 철딱서니 없는 것. 하고 내뱉었다. 나는 그가 현재 그의 옆에 두지 못한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내게 인정받고 싶어했고, 기대고 싶어했다. 그는 나의 말에 다소 시무룩해했다.

그의 엄마는 그와 그의 동생의 존재를 귀찮아 한다고 그가 그랬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웃고 있엇으나, 그의 통통하고도 길쭉한 종아리는 계속 그의 오른쪽 무릎을 불안한 듯 문질러 댔다. 꼬아 올린 다리의 무릎이 바알갛게 물들었다. 그게 딱해보였다.

그 이후로도 그는 하루의 반 이상을 아버지와 함께 살 생각으로 부풀어 있다. 그의 얘기를 멍하니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만약에 사하라 사막에 간 얘네 아빠가 죽었다면? 아무래도 사막은 나에겐 그저 상상이나 환상 같은 거니까. 어디엔가 있다고는 듣고 사진으론 보았지만, 현실감은 없다. 현실감이 전혀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런 못된 상상도 가능한 거라고 나를 납득시켰다. 혜성인 여전히 꿈꾸고 있다.

6.xx

겨울이지만 중천에 뜬 해는 나무 창틀을 강하게 때린다. 금방 불이 붙어 무너질 것 같은 반질대는 나무 창틀. 사하라 사막에서 그의 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오셨다. 그는 이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이미 아빠와는 말도 마쳤고 짐도 다 싸놨다고한다. 그럼 뭘 망설이는 거냐고 흥미없다는 말투로 가장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괜히 심각해 질 필요는 없다. 그의 불안만 더 재촉할 뿐이다. 그냥.. 그냥. 엄마한테 이 집이 싫으니까 이 집을 나가서 이젠 아빠랑 살겠다고 말하기가 힘들어. 나는 속으로 은근히 비웃었다. 엄마 모르게 모든 걸 다 준비해 놓은 걸로 이미 그녀를 기만한 건데, 뭐가 또 두렵니. 그래서, 이제와서 그만둘거냐고. 아니. 그래도 금방 생각 해 낸것은. 뚫었다가 막힌 귀 다시 뚫으면 아프다는 거. 뛰놀다가 엎어져서 까진 무릎도 다시 넘어지면 또 까지고, 깨지고 아픈거고.

저번에 얼핏 보게 된 그의 엄마가 생각났다. 애쉬그레이. 그야말로 잿빛이었다. 거의 다 세어가는 까만 머리가 조금 지저분하게 얽혀있었다. 주름이 자글자글 한 그녀의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은 다소 신경질 적이었지 아마. 연습은 언제 끝나느냐고, 집에 언제 갈 거냐며 그를 닦달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깜빡깜빡. 몇번을 또박또박 감았다가 떴다. 그리곤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피곤해 보였다. 그녀의 하이핏치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골이 울리는 듯 했다.

The next day

익숙한 교실의 익숙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첫 교시라 난방이 덜 된 교실은 추웠다. 조금 일찍 온 건지 교실엔 아직 아무도 없다. 진정 겨울이 좋다. 볼을 아프게 에는 그 느낌이 즐거웠다, 그 후에 온기를 받아 사르르 녹으며 간질간질해지는 그 느낌도 즐겼다. 아무도 없는 겨울의 교실은 싸늘하고 고요하고, 아름답다. 반질반질한 책상에 머리를 뉘였다. 어젯밤 잠을 설친 탓에 눈이 뻑뻑했다. 책상에 마주 닿은 볼이 시큰할 정도로 시렸다. 이 느낌이야. 몸을 살짝 부르르 떨며 책상에게 내 온기를 나눠주고 있는데, 껄찌르륵 하고 나무가 긁히며 밀려서 아우성대는 소리가 났다. 교실의 문은 상당히 낡아서 조금 힘을 주어야 열리는데 그럴때마다 저렇게 힘겨운 소리를 낸다. 안타깝다. 아름답지만 삭막하게 여겨지는 교실로 들어오는 이를 아무도 맞이 하지 않는 것은 조금은 많이 쓸쓸하고 슬프다. 그래서 나와 온기를 나누던 책상과는 잠시 작별을 하고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혜성이다. 달려온 걸까, 그의 입에서는 조금 힘겹게 하얀 숨이 뱉어져 나오고 있었다. 머리를 감은건지, 땀에 젖은건지, 아니면 머리를 안 감아서 그런 건지 머리칼이 군데군데 뭉쳐있다. 자신을 응시하는 나를 바라보곤 이내 눈을 살짝 휘어보인다. 다른이라면 모를까, 그에게 하는 인사는 조금 어색하다. 너무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그냥 눈으로, 어 너 왔냐. 반갑다. 이쪽이 더 편하다. 그의 눈은 반짝반짝 신기하게 유난히 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와 반면 그의 얼굴은 하루새에 조금 헬쓱해져 있었다. 눈 아래에 살이 조금 더 도톰하게 튀어나오고, 그 아래에는 한층 더 짙어진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엇다. 까맣게 박힌 눈동자만 유독 신이났다. 그에게는 큰 블레이져가 줄줄 흐러내려 발갛게 곱은 손가락의 반을 다 가렸다. 블레이져 밖으로 나온 손가락들이 움찔움찔 이따금 움직였다. 긴 다리가 부러질 듯 휘청휘청 휘며 걸음걸이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또 이상하게 가뿐해 보였다.

-후아, 드디어 옮겼다. 그는 한숨을 토해내듯 말을 뱉었다. 그리곤 내 옆으로 와서 슬쩍 앉았다. 그의 홀쭉한 가방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 바닥에 사뿐 내려앉았다. 이렇게 말하면 웃길테지만, 무척이나 우아해 보였다. 가방은 텅텅 빈 것 같다. 종이 한 장이나 들어있을지 모르겠다.

“엄마가, 나가래. 막 소리지르더라. 당장 나가래. 꼴도 보기싫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나갈거라는데. 참. 하아…”
“…….”
“그래서, 올리비아가 와줬어. 알지? 울 아빠 여자친구. 차 좋더라.”
“…옮기니까 좋아?”
“응. 좋아. 그렇게 편하게 잔 거 정말 오랫만이었던 거 같아.”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잠 못잔 사람처럼 퉁퉁 부었냐고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별달리 하고 싶은 말도 없어서. 가만히 책상과 뺨을 나란히 하고 시선 둘 데 없이 눈만 깜박였는데, 그가 홀쭉 찌그러진 가방을 다시 집어든다. 바시락 대는 소리가 잠깐 들리고 이내 모퉁이가 찢겨나가고, 수십번은 더 접었다 폈다 한 것 같은 꼬질꼬질한 종이 한장을 꺼내들었다. 아무것도 안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종이 한장은 들어있네.

“이거 봐봐.”

때 탄 종이를 나에게 내민다. 착착 접혀있는 종이를 폈다.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큰, 아마도 사람으로 추정되는 생물이 두 개 그려져 있다. 너무 작고 가는 몸뚱아리 때문에 그만한 머리가 붙어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크레파스가 서로 쓸리면서 생겼을 지저분한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컸는데, 그는 위로 삐죽삐죽 솟은 머리에 무섭게 치켜 오라간 세모꼴 눈을 하고 있었다. 손에는 칼까지 쥐고 있어서 함층 더 그를 섬뜩해 보이게 만들었다.

“혜준이가 그렸어.”

오히려 제대로 된, 그러니까 조금 더 어른이 그렸으면 전혀 느낌을 주지 않을 그림인데, 혜성이의 여덟 살 배기 셋째 여동생 혜준이가 그린 그림은 너무 정직하고 순수해서 어떤 그림이든 곧이 고대로 일어버릴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 그림이 아무리 현실성 없는 괴물 나부랭이 낙서라 해도. 이내 그 옆에 자리한 대화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빤 니가 너무 싫어. 널 죽여버릴거얏!’ 글씨가 참 반듯반듯하게도 써져있다. 여덟 살 답지 않게 ‘싫어’의 받침이 똑바로 쓰여 있었다. 그래서 더 선뜩한 기분이 되었다. 옆에는 혜준이로 추정되는 양 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푸른색으로 꼼꼼하게 칠해진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무려 얼굴의 반만했다. 너무 놀라서, 목이 잠기는 거 헛기침으로 좀 풀어주고, 잠자코 그림만 응시하는 그의 옆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물기베인 축축한 모습이다. 발간 코 끝은 마치 그가 한참을 울어서 그리 된 것처럼 보였다.

“이…이게 뭐야? 혜준이가 그린거라구?”
“응. 어제 집에서 나가는데, 혜준이가 나와서 홱- 던지고 방으로 다시 들어가드라? 자는 줄 알았는데… 기지배.”
“근데, 왜 이런 걸…”
“내가 밉대. 저랑 혜민이랑 혜소 두고 나만 딴 데 가서 산다니까. 내가 저희들을 버리고 도만 가는 거 같나봐. 내가 저들 귀찮아해서 아빠네로 가는 거라고…”

얼마나 맘이 쓰렸을까. 그래도 그렇게 아끼던 여동생인데. 사진까지 지갑 한쪽에 꼽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내 동생 너무 예쁘지 않느냐고 자랑을 해 대던 녀석이다.

짐스럽긴하지만.. 조금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귀찮은건 아냐. 나 그래도 내 동생들 많이 사랑하는데, 이런 말 부끄럽지만…. 혜성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우선 내 머리는 지금이 편하고 좋은거라고 잘 했다고 하는데. 진짜 잘 하는 짓일까? 반짝이던 눈이 눈물에 젖어 들어간다. 여전히 반짝거린다. 하지만 맺힌 눈물을 흘려 보내지는 않았다.

누군가 올 법한 시간인데 아직 아무도 등교하는 사람은 없다. 고요하고 차가운 교실안에는 혜성이와 나, 단 둘뿐이다. 그러니까 조금 용기를 내 보았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 정도쯤이야. 얼어서 뻣뻣해진 두 팔을 조금 움직여 아직 찬 기운이 덜 가신 듯 서늘한 기운을 내는 그의 등을 감싸안았다. 흰색으로 깨끗하게 빨아 다린 그의 칼라 깃 위의 솜털 보송한 정갈한 목선이 긴장하는게 느껴졌다. 그는 약간 놀란 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흘끗 보았다. 애걸하는 눈빛에 호기심과 즐거운, 약간의 흥분까지 섞인 걸 난 느낄수 있었다. 그는 내 다른 쪽 팔을 자신 앞으로 끌어 당기더니 팔 위에 조그마한 그의 머리통을 뉘였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정혁아. 라고 들릴 듯 말 듯 내 팔에 잔잔한 울림을 남기며 혜성이가 말했다. 투명한 겨울의 뜨거운 태양이 교실안으로 들어와 내 눈에 찡한 통증을 남겼다. 눈이 시큰거린다.

And so on…

아직은 겨울이다. 여전이 겨울이 좋고, 아직은 좀 더 겨울을 즐길 예정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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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d on what i've heard from S
sorry mate,
and thank you.
Posted by 기린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