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2008. 9. 22. 21:26


안녕?
정말 봄같은 날이었다. 사실 봄이지만 계속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봄같지 않았단 말이야.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학교에 갔어. 그리고 학교 건물 앞에 햇빛이 화사하게 쬐이는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스피커에 우리 오 언니 노래 틀어놓고 담배를 연달아 피면서 가끔씩 펩시맥스를 목구멍을 태울것처럼 꿀꺽꿀꺽 삼키면서 따사로움을 즐기고 있었지. 물론 나름의 계획은 있었어. J가 나올 때 까지 이 앞에서 움직이지 않을거야! 손에는 그래니스미스 그린애플을 쥐었다 놓았다 만지작 거리면서 옆에 같이 앉은 친구한테 '그 대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어.
"are you gonna eat that?"
"oh, yeah, totally."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결국 안 먹었어. 사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먹을 수가 없었다구. 하지만 J가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햇살덕에 행복하고 즐거웠어. 사실은 J 안나와도 그냥 이대로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조금 있다가 기척도 몰랐는데 J가 앞에오더니 딱 서잖아! 평소같이 그 무언가 어정쩡한, 소심한, 웃는건지 찡그리는건지 모를 그런 웃음을 아니 미소를? 어쨌든 그 나를 기쁘게하는 표정으로! 갈색 낡은 반팔 티셔츠 아래로 달랑거리는 뼈가 보이는 두 팔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입이 안다물어졌어. 우히우하으히히히히히히. 오늘따라 유난히 핏이 딱 맞는 바지를 입었어, 사실 스키니여야 하는데 다리가 너무 말라서 그 바지가 남더라고. 유난히 더 빼빼해 보이는 날이야. 그런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보이더라고. 옆에 있던친구도 나중에 이렇게 말했어. "he looked real happy today." 다리도 길고 예뻐. 팔도 예뻐. 팔에 난 털도 예뻐. 간단한 인사를 했는데 손에 들은 조그만 연두빛 플라스틱 통을 만지작거리다가 내 옆쪽에 앉았어. 살짝 어색한 거리감이 우리가 앉은자리에 있었지만, 그런 것 쯤이야! 내 쪽을 보면서 내 옆에 앉아서 나한테 말을 거는데! "how's your work going?" 하하하하하하. 오늘 튜터랑 1 on 1있는데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걱정하는 줄 어떻게 알고 또 저런 질문을? 하하하하. 어정쩡하게 웃으면서 곤란한 침묵으로 답하니까 알았다는듯이 피식웃었어. 나도 예의상 너는 워크 잘 되가냐고 물어봤지. 뭐 이것저것 프로젝트때문에 만들게 많아서 요새는 거의 우드워크샵에서 지낸대. 그럴줄아았어. 사실 어젠가 그젠가, 아니다 정확히 저번주 목요일이구나. 목요일날 워크샵에 무언가를 빌리러 갔을때 허리를 숙이고 나무를 자르는 모습이 굉장히 멋져보였던 기억이 내 뇌에 똑똑히 남아있다구. 역시 남자라면 우드워크! 그리고 다시 빌린 물건을 돌려 주러 갔을때는 construction area에서 고개를 테이블에 바짝 갖다대고 세심하게 나무를 조각하는 모습에 내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집중하는데, 집중하는 남자의 모습은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구나. 아니 난 아무래도, 이번에도, 역시나, 깍지가 제대로 씌인 것 같아. 언제나 처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양손으로 꼭 쥔 런치박스를 열까 말까 망설이는 듯 하더라고. 점심이래. 뭐 들어있냐고 하니까 샌드위치래. 열어서 먹으려고 하는데 아보카도인지 양상추인지 무언가가 통 안에 범벅이 되어있더라고. 좀 민망했는지 거기서 먹을 줄 알았는데 다시 닫더라. 그냥 옆에서 먹지. 악! 그리고 모르는 이름의 누군가를 봤냐고 물어보더니 어슬렁어슬렁 다시 워크샵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얼마후에 다시 휘적휘적 나와서 지나가는 길에 눈을 마주치니까 한번 또 씩 웃고 언덕위로 걸어갔습니다. 언제나처럼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가방도 뭐도 하나 없이 시원하게 팔을 휘적대면서 씩씩한 걸음으로! 아 맞아. 가까이 있으면서 눈을 똑바로 보면서 대화를 했는데. 눈 색이 너무 예뻤어. 헤이즐넛색에 피스타치오색의 테두리. 갈색인것같은데 두가지 색이 적당하게 섞여있더라고. 아아 예쁜 눈. 예쁜 코. 난 정말이지 마른 팔,다리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걸까. 갖지 못한것에 대한 아쉬움이 동경과 집착/편집증처럼 나타나는건가.
한참 후에 한 손에 스시 한 팩을 사들고 오더라고. 샌드위치로는 부족했나. 아아 경쾌한 걸음걸이. 그리고는 아직도 햇볕아래 앉아서 헤벌레 좋아라하는 나랑 내 친구한테 웃으면서 "sitting in the sun all day long?" 하더라. 아 사교성도 좋아. 불쌍한 J. 사랑스런 J. 왜 좋은지 이해 안가는 내가 좋아하는 J.
오늘은 날씨만큼이나 하루종일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했어. 그리고 집에와서 빵도 많이 먹고 식사도 제대로 했어. 아니 제대로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무언가를 먹었어. 그리고 소화 시킬거야. 더부룩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아 맞아, 그러고보니까 i haven't told you one of the best parts! 기린말야. 한달이 지나도록 전혀 소식이 없길래 오늘은 마침 옆에 앉아있겠다 물어봤지.
"by the way, what happened to the giraffe?"
"oh that, i was too busy with my projects and.. yeah... i will just have to spare some time to make it. it won;t take long. it will probably take me about a day to draw and actually make it. maybe next weekend, yea and i'll txt you then."
개새끼 아직 그림도 안 그렸단 말이냐! 하고 분노할새도 없이. 조곤조곤 차분하고 듣기좋은 목소리와 말투에 한번 넋이 나가고, 마지막 'I'll txt you' 에서 완벽하게 녹다운. 헤롱헤롱 갑자기 막 웃고싶어지고 입이 헤벌쭉 벌어질라그러는거 참느라 나 고생 좀 했어. 그런데 꼭 다해야지 텍스트 하는거야? 그냥 심심할때 텍스트 하면 안되는거야? 그냥 텍스트해도 되는데............ 어쨌든 텍스트해준대. 텍스트 텍스트. 이제 맨날 텍스트 오는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거야 난. 히히히히히히.
하루종일 눈물나게 달콤한 초콜렛케이크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쑤셔넣을때의 기분이었어. 숨막히면서도 눈물날것같기도하면서 달콤해서 기분좋은 요상한 그런기분있잖아. 어제 커다란 초코렛 케익 하나를 다 먹었으면서도 오늘 하루종일 그 케익이 또 먹고싶더라. 촉촉하고 축축하고 달콤하고 초콜렛스러운.
너의 하루는 어땠을까?

Posted by 기린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