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Ric, it’s Steve here. 저기… 나 방금 4번가 골목에서 키아누 본 것 같아. 아저씨 집 나갔다고 하지 않았어? Hey, hey!?’ 에릭은 수화기를 냅다 던지고 4번가로 무작정 달렸다.
정말 있었다. 이미 셔터를 닫은 가게 앞에 박스를 깔고 자기 안방이라도 되는 양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여유롭게도 담배를 물고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키아누 제발! 에릭이 목까지 내려오는 땀에 젖은 검은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손으로 헝클었다. 눈물이 왈칵 나려는게 창피해서 눈에 힘을 꾹 줬다. 꼭 삼일만에 보는 얼굴이 말도 못하게 꾀죄죄하고 더러워서 찾아내면 어디 있던간에 꼭 키스 해버릴거야, 아무데도 못가게 도장 찍을거야, 했던 마음도 다 사라져버렸다.
“맙소사! 그 노숙자 같은 차림은 대체 뭐냔 말야, 아저씨-!”
평소처럼 학교에 다녀왔는데 소파에 제멋대로 널부러져 담배를 피고 있어야 할 아저씨가 안 보이는거다. 밖에 잠깐 뭐 사러갔겠지 하고 책을 조금 들여다보다가 배가 고파져서 샌드위치도 하나 만들어먹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에릭은 조금 불안해졌다. 그래서 소파에 아저씨와 똑같은 포즈로 누워서 담배도 한대 물었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깼을때는 이미 해가 진 상태였다. 텅 비어서 더 춥게 느껴지는, 불 꺼진 집에 혼자 누워있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이 외로웠다. 아저씨가 집 붙박이두 아니고 볼일이 있겠지 생각하려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아 분했다. 그 날은 그렇게 이제나저제나 오려나하고 눈뜬채로 꼬박 밤을 샜다. 성의없이 막 썰은 치즈와 통조림에서 꺼내 쭉 짠 파인애플 몇덩어리를 다 찌그러진 식빵에 ‘쳐’넣어주는 키아누의 아침이 없어서 학교 갈 힘도 안났다. 그래서 계속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계속 꼬여만 갔다. 에릭은 키아누가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걸 최근 어렴풋이 눈치 챘다. 십년이 훌쩍 넘는 나이차이의 갭은 확실히 크긴 했다. 조금 과장해서 거의 아들뻘이니까. 하지만 이미 한두번 섹스를 한 것도 아니고 할 건 실컷 다 해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황당하다 생각했다. 물론 자기 집을 자기가 나가는 것도 웃기고.
“자, 이제 설명해봐.”
“Explain what?”
“왜 집을나가서 들어오지도 않고 그런 거지 같은 꼴로 있었는지.”
“에릭, 너 요새 목소리 더 굵어진거 같아. 키도 부쩍 크고. 키우는 보람이 있구만.”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나온 키아누는 나오자마자 아무말도 없이 또 담배부터 집어들었다. 곧 축축하게 젖은 입술사이로 후욱- 하고 회색의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와 뭉글뭉글 집안으로 퍼져나갔다. 에릭은 그저 분통이 터질 뿐.
“악!!!!!! 내가 네 아들이야?! 왜 이래!!!!”
신경질이 머리 끝까지 뻗친 에릭이 성큼, 키아누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욕실에서 막 나온 키아누는 에릭의 기세에 밀려 막 닫은 욕실 문짝에 등을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에릭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작았지만 눈높이는 얼추 비슷했다. 처음 봤을때는 내 머리 절반 밖에 오지 않았는데. 팔팔 성내는 에릭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옛 감상에 빠져있는것이다. 에릭은 저돌적으로 돌진해 흰 가운의 앞섬을 꾹 쥐고 양 옆으로 활짝 벌렸다. 그리고 ‘여긴 정말 안 어울리게도 분홍색이야,’ 라고 언젠가 자신이 말했던 곳에 입술을 갖다댔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키아누는 머리 한 쪽이 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마를 축축하게 적시는 물기에 젖은 흑발을 한손으로 대강 넘기고 눈을 감았다.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방금 한대를 폈는데도 담배가 고팠다.
“노숙자 체험.”
“뭐?”
“노숙자 체험 한번 해봤어. Please don’t be mad at me, my boy.”
에릭은 눈썹을 찡그리고 살살 핥고있던 유두를 꽉 깨물었다. “악-!!” 갑작스런 도발에 키아누는 에릭의 반듯한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저 쪽으로 떼어놓았다.
“그 말 싫어! 이젠 소년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이름 불러줘.”
“Okay, calm down, my girl.”
이런 상황에서 까지 자신을 놀려대는 그에게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 에릭은 키아누를 똑바로 봤다. 몸도 얼굴도 하얀데, 머리카락과 눈썹은 쌔까맣다. 한국인인 자기보다 더 까매서 신기할 정도다. 할아버지가 중국계랬던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빨려들어갈 것 같은 깊은 눈에 물기가 고여있어서 에릭은 몸이 달아 돌 것 같았다. “그렇게 보지마, 이상해지는 것 같으니까.” 에릭이 키아누의 눈 위에 살짝 입술을 얹었다. 입술을 간지럽히는 속눈썹의 느낌이 참 좋았다. 키아누는 요새 부쩍 자란 에릭의 머리칼 사이에 손을 집어 넣고 조금 더 자신쪽으로 가까이 끌어 당겼다.
“이젠 정말 소년이 아닌 거 같아. 언제 이렇게 컸어, 에릭.”
“아저씨가 맨날 야한 짓 해서 안 클래도 안 클수가 있나.”
에릭이 고개를 살짝 숙여 키아누의 부드러운 귓볼을 입술사이로 살짝 물었다가 축축한 혀로 찹찹대며 핥았다. 키아누는 시선을 내려 여진히 자신의 가운을 꾹 붙잡고 있는 에릭의 손을 흘끗 보았다.
“오늘은 멍멍이 모드야?”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가끔은 이렇게 애무를 받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키아누는 가만히 에릭이 하는대로 냅두고있었다.
“아저씨… 키아누.”
“…응.”
“Kiss me, hold me tight, squeeze me,”
“Sure will”
“lick me”
“Of course, my boy.”
그러니까 가끔은 집을 나가주는 센스가 필요한거군, 키아누가 생각했다. 이렇게 어리광으로 안겨올줄이야.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눈가에도 주름이 살짝 잡혔다.
“and… fuck me.”
“Most definite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