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제2007. 4. 15. 18:59
 


Go, go, 고3 커플!!♥
BGM –Michelle Branch (feat. Santana)의 유쾌하고 발랄한 Game of Love! (<<찾아들으시오)





시험 첫날을 4일 앞둔 일요일이다. 날이 선들선들 바람이 불고 해가 반짝반짝 화창한 게, 니가 이러고도 안 나가고 배기나 보자, 싸움을 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찬란한 고3명함이 있다. 날씨가 싸움을 걸면 맞 받아 싸워야만 한다. 그런고로 둘은 퀘퀘한 냄새가 나는 독서실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화창한 날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고3이란 타이틀은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다크서클 같은, 그리고 또 수심깊은 바다에 거주하는 공포의 괴물 문어 같이 거대하고, 무겁고, 끈끈하고…(??) 기타등등. 그런 거 아니겠는가. 아, 여튼간 그런 이유로 우여곡절 끝에 막 시작한 연애의 씨앗은 땅에 파고들어 안전하게 안착하긴 했으나, 어디 물 마시고, 햇빛 쏘이고, 맛난 영양분 공급받을 새가 있어야지! …도저히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언제 싹 틔우고 꽃피우고, 열매 맺어서 결실을 보겠냐 이거야!’

쥐, 쥐에 기생 하는 박테리아까지 죽은 듯, 고요하기 짝이 없는 독서실에, 불평 불만이 가득 차 부풀어 오른 심술보 볼의 소유자 정필교 군이 신경질 적으로 툭툭 차대는 의자에서 둔탁한 소음이 규칙적으로 울려퍼졌다. 처음엔 그저 한 두번 그러고 마려니 하고 넘겼던 열공인들이 그 소리가 다섯 번 이상으로 넘어가자 찌푸린 인상으로 하나 둘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정필교군에게는 심술보에서 자체 생성되는 프로텍트 레이어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반응은 눈에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필교의 발길질은 횟수가 더할수록 거세지고 있었는데, 그 자세한 이유로는 이 시끄러운 소리로 인해 고개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정작 ‘지금 무슨 소리가 나고 있는거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듯한 까만 정수리만 내보인 채 펜을 놀리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에서 울컥- 하고 뜨거운 감정이 치솟았고, 급기야는 그 뜨신 감정이 너무 위로 올라와 요 몇주사이 더 뚱뚱빵빵해진 심술보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데에 있다.
‘참자. 참자. 참자.’ 필교는 불현듯 무진장 억울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네가 옆에 있으면 집중도 안되고 공부도 안 되는데! 넌 안 그런 거야?!’

학생 때는 연애고 뭐시기고 공부에만 전념할 필요가 있다던 엄마의 말씀이 어렴풋이 생각 날 듯 말 듯 뇌 한 구석을 간질였지만, 어쩌겠는가. –늦어버렸다! 이미 연애에 제대로 빠진 필교는 공부따윈 아무렴 어때. 내가 놀고 먹으면 우리 이쁜 정혁이가 벌어다 날 먹여살리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 따윌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필교는 책상의자를 열심히 차댔는데, 그 때 더 참지 못한 열혈청년 하나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쌍시옷자를 내 뱉을 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정혁이 조금 더 빨랐다.

“…그만.”

-오, 나이스 타이밍. 적절한 정혁의 저지에 멈출 줄 모르고 의자를 신나게 차대던 필교가 딱 멈췄고, 열혈청년도 급히 내 뱉으려던 욕설을 다시 주워 담으려는데 둔한 혀가 멈춘 채로 ‘쓰으으--’ 하고 바람 빠지는 쌍시옷 소리를 내고 말았다. 독서실의 시선은 이 카리스마에 가득 찬, 무심하고도 둔한 남자에게 온통 쏠려있었다. 하지만 정혁은 그런 시선엔 별 다른 신경으 쓰지 않았다. 이미 옆 여학교를 지나다니면서 신물 나도록 익숙해진 일이고, 좀 더 정확하게는 쓸 필요도 없는 신경이기 때문이다.

정혁은 여전히 자신을 퉁퉁 부은 표정으로 쏘아보는 필교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대체로 눈치가 빨랐으니 철 없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어째서 다 뿔어터진 호빵꼴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짐작을 하고도 남았으리라. 정혁은 가만히 필교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엄지 손가락가 중지 손가락이 닿을랑 말랑 한다. 정작 붙어있는 살은 얼마 되지 않는데 뼈 자체가 워낙 통뼈다. 필교의 표정은 그 때 까지도 사나웠으나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손목이 잡힌 순간, 적당한 온도의 정혁의 손에서 심장을 전해 받는 기분이었다. 잡힌  부위로 부터 두근두근 심장박동이 온몸으로 울려퍼지는 듯 했다. 어느덧 미지근 하다고 느꼈던 손이 데일 듯 뜨겁게 느껴졌다. 필교는 문득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별다른 의미 없이 했을 사소한 행동에 이렇게 크게 반응하게 만드는 정혁이 얄미웠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정혁이 너무나 좋았다. 자신도 컨트롤이 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얽히고 섥히는 가운데 정혁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뚫고 들어왔다. 들릴 듯 말 듯 한 조용한 속삭임인데도 정확하게 들리는게 신기하다.

“무슨 생각해..”

답을 바란 물음은 아니었는지 우물쭈물 눈동자를 굴리는 필교를 보고 마냥 사랑스럽다는 듯 씨익- 웃고는 그제껏 쥐고 있던 손목을 부드럽게 끌었다. 독서실의 사람들은 하나 둘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책상위의 책으로 고개를 돌린 지 오래였고, 민망하게 그때까지도 엉거주춤 서 있던 청년은 그대로 그냥 앉기가 무안했는지 자판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둘은 고개를 살짝 틀어 서로를 마주보고 쿡- 웃음을 터뜨렸다. 정혁은 다시 혜성의 손목을 제쪽으로 끌어당기며 재촉했다. 필교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입모양으로 ‘뭐?’하고 물었다. 정혁이 초등학생마냥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있는대로 주고 흔들흔들 보채자 필교는 몸을 느슨하게 풀며 그 힘에 이끌려 주었다.

태양은 여전히 화사했고, 바람 역시 여전히 살랑살랑,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온도로 피부를 스쳤다. 뜨거운 손목의 연결부분을 식혀주기도 했다. 앞선 정혁이 어디로 발걸음을 할 지 잠시 망설였다. 멈칫하다가 독서실 옆 골목으로 필교를 이끌자, 조금 붉게 상기된 얼굴의 필교가 코웃음을 쳤다.

“풋- 뭐야. 고작 데려온다는 데가 여기야?”
“왜애, 좋잖아.”

느물거리는 말투로 정혁이 대꾸했다. 사실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독서실 건물이 제법 선선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고, 바로 앞 건물의 유리창에 반사된 햇살 한 가닥이 구석 한 군데를 비추고 있어서 제법 아늑한 느낌도 났다.

“잠깐만 기다려. 마실 거 사올게.”
“엉…”

정혁이 동전을 짤랑 거리며 요 앞에 보이는 슈퍼를 향해 뛰어간다. 그냥 걸어도 금방 닿을 거리인데 뭐가 그리 급한지 모르겠다. 후줄그레한 추리닝 차림에 삼선쓰레빠를 착착착 끌며 뛴다. 뜀과 동시에 머리가 나폴나폴 날리면서 가색으로 햇빛에 비치는게 아무리 봐도 너무 깜찍하다. ‘진짜 단단히 코 뀄구나, 정필교. 하아-’ 속으론 한탄 같지 않은 한탄도 해보지만 입꼬리는 자꾸 올라가기만 한다.

들어간 지 1분도 안 된거 같은데 벌써 정혁이 손목에 까만 비닐봉지를 달랑대며 다시 이쪽으로 뛰어온다. 그냥 천천히 걸어오라고 소리칠까 말까 생각하는 사이에 벌써 몇 발자국 앞에 서있다. 정혁이 무릎을 잡고 밭은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고른다. 발목께에서 비닐봉지가 바스락댄다. 벽에 등을 기대고 마치 자기 방인 것 마냥 앉아있던 필교가 스윽 팔을 뻗어 비닐봉지를 채갔다. “뭐 사왔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비닐봉지에 고개를 들이밀며 필교가 물었다. 그리고는 정혁이 차오르는 숨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빠나나 우유닷!” -하고 외쳤다.

“이거 오랫만이네? 우리 어렸을 땐 되게 자주 사 마셨던 거 같은데.”

톡. 뾰족한 스트로우의 끝이 바나나 우유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꽂혔다. 필교의 입술이 오물조물 움직임과 함께 흰 빨대가 노오란 병아리 솜털 색으로 변했다. 달달한 바나나 향이 입안 가득 퍼지자 필교는 행복함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꼴깍꼴깍 우유 넘어가는 소리가 날 때마다 그의 목젖이 같이 귀엽게 오르락 내리락 움직인다.

정혁은 한결 안정된 호흡으로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 그런 필교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흐뭇한 표정도, 느슨하게 풀린 표정도 아니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마지막 진 풍경이라도 되는 듯 한 없이 진지하기만하다.

숨 한번 안 쉬고 바나나 우유를 빨아대던 필교가 숨이 찬지 급하게 입을 빨대에서 떼고 거치게 숨을 들이쉬엇다. “하악-” 달콤한 바나나 향이 곧장 정혁에게 가 닿았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아버리는 듯한 현기증에 살짝 중심을 잃으며, 벽에 등을 대고 바닥에 긴 두다리를 쭉 뻗고 앉은 필교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간신히 두 팔로 벽을 짚었다. 순식간에 정혁의 팔 안에 갇혀버린 필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드는데, 필교가 놀랄 새도 없이 정혁이 그대로 입을 맞추어왔다. 심하게 놀란 필교의 손에서 바나나 우유가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정혁은 잠시 입을 떼고 필교와 시선을 맞추었다. 동그랗게 뜬 필교의 눈이 보였다. 이내 다시 눈을 스르륵 감은 정혁이, 다시한번 젖은 필교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벽을 짚고 있던 팔이 살며시 내려와 그 짧은 시간에도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필교의 두 뺨을 감싸쥐었다. 필교역시 허공에 어정쩡하게 두었던 팔을 움직여 정혁의 목에 둘렀다. 맞 물린 두 입술 사이로 붉은 정혁의 혀가 조심스럽게 움직여 예의를 갖춘 인사를 하듯 필교의 혀를 톡톡 건드리다가 조금 더 깊숙이 혀를 놀리자 달달하고 싱그러운 바나나 향이 둘의 입안에 가득 맴돌았다. 살풋 감긴 두 쌍의 눈커풀이 첫 키스가 주는 짜릿한 여운으로 잔잔히 떨렸다.



오랜 시간을 마주 닿았던 입술이 촉- 물기를 머금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직도 현실이 아니라 꿈에서, 그게 아니면 구름위에서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얼굴로 피가 다 몰린 것 같은 느낌에 필교는 입술을 떼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혁은 아직 아무 말이 없다.

민망해진 필교가 흘러내린 침으로 축축해진 턱을 손등으로 쓱 문지르며 목소리를 괜히 더 높였다.

“야! 얼른 가서 바나나 우유 하나 더 사와!! 너 때문에 떨어뜨렸잖아. 진짜 인간이… 아까운줄을 모르고!”

정혁은 필교의 동그란 콧망울과 붉게 부풀어 오른, 젖은 입술을 슬쩍 훔쳐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고, 봐왔던 사람인데도… 아직도 이렇게 곁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언제까지나, 아주아주 오랜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줄곧 함께였으면 하고 무엇보다 바란다.

아직도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처럼 뛰어대는 심장을 가지고 정혁이 머리칼을 나풀대며 다시한번 슈퍼를 향해 뛰었다.

드디어 연애의 싹이 텄다.











“야, 야, 야!! 교무실 옆에 전교등수 쫙 떴어!!!”

이런 개 같은. 우린 감수성이 제일 예민한 고삼인데! 어떻게 전교등수 따윌 그렇게 공개적으로 까발릴 수 있는 거야!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 달라, 달라!!!!!!

발 빠른 어떤 아이가 교실문을 활짝 열고 핫뉴스를 전하자 벌떼같이 다들 일어나 왱왱대기 시작한다. 꼴도보기 싫고 듣기조차 싫다는 듯 얼굴을 책상에 파묻고 드러누워 버리는 포기형이 있는가 하면, 가슴 떨려서 못 가보겠다고 가슴께를 두 손으로 부여쥐는 산만한 덩치도있다.

그러나 필교와 정혁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소식과 동시에 눈을 잠시 마주치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발걸음을 맞춰 걸으며 교무실로 향했다. 정혁도 필교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떨고있었다. 떨어진 성적은 학생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거고, 학생의 본분을 어째서 충실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둘에겐 현재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제 1의 요소가 성적이라 더욱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필교가 받는 압박은 더했다. 평소 성적이 남들에 비해 우수했던 것도 있고, 장남으로서 받는 부모님의 기대도 컸다. 필교는 아찔해오는 정신을 지탱하기 위해 정혁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학교라서 그럴 수도 없었다. ‘으아. 약해지지 말자, 정필교.’ 그래서 마음을 최대한 가다듬고 담담해지려 노력했다. 필교는 곁눈으로 정혁을 흘끔봤다. 딱딱하게 굳은 입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정혁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둘은 어느덧 교무실에 다다랐는데, 그 앞은 이미 각 반에서 몰려든 아이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밀려들고 나가는 아이들 틈에서 몇 분을 허부적대고 있으려니 필교와 정혁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숫자와 이름이 빼곡한 종이 앞에 서있게 되었다. 끝도 없이 늘어진 종이에 빼곡한 글씨들을 보자니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아다. 필교는 잠시 그 앞에서, 자기이름을 맨 위에서부터 찾아야 할지 맨 아래에서부터 찾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남자는 깡이지!’ 하는 이 고민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한 ‘깡’을 운운하며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이름들을 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등 이선호. 에이씨. 이 새끼는 또 전교1등이야? 재섭서. 2등 김동완. 3등 이민우. 4등 박충재… 뭐?!?! 바악충재?? 뭐야, 이 새끼… 고액과외라도 한거야? …………………44.45.46.47. 아이, 시발. 도대체 몇등이 떨어진거냐!!! 우어, 엄마한테 죽게 생겼… 49 정필교. 끼악!!!! 다행이다. 그래도 50등 안은 고수했어. 어흐, 기특한 넘!! 잘했어, 필교야.’

한참 떨어진 전교 등수에도 나름 만족해주는 여유를 부리며 자신을 칭찬하던 필교는 1등부터 50등까지의 등수에 정혁의 이름이 없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다급한 마음이 한층 고조되었다. ‘아, 정혁이가 자격지심 느끼면 어떡해? 헤어지자 그러면 어떡해!!!’ 필교는 눈을 미친듯이 굴려대며 정혁의 이름을 찾았다. 다행이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정혁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전교 99등. 간신히 턱걸이로 100등 안에 들었다. 필교와 정혁은 다시 눈을 마주쳤다. 둘의 눈에서 스파크가 파바박 하고 튀었다.

‘아, 키스하고싶어.’
시험의 긴장감도 나름 풀리고 성적까지 나왔는데 조금은 느슨하게 가도 되겠지. 교무실에서 점점 멀어져 아이들이 시야에서 하나둘 사라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조금 움직여 가까이에 위치하던 서로의 손을 마주잡았다. 열개의 손가락이 퍼즐이 맞아가듯 맞물려 미지근한 온기를 내고 있었다.

둘은 복도 끝에 있는 캄캄한 화장실로 쏙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키들대는 정필교군의 웃음소리가 심상치 않다. 정혁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좁아터진 칸막이 안으로 필교의 등쌀에 밀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위로 쭉 쨰진 눈이 둥글게 휘며 자신을 응시하다가 다시 자잘한 주름을 내보이면서 살풋 감기는 걸 정혁은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음엔 공부 더 열심히 할거지?”

쪽. 쪽.

“응.”

쪽. 쪽쪽.

조그만 소리도 잘 울리는 화장실에서 듣기에도 민망한 쪽쪽대는 소리를 아주 크게 내가며 둘은 입술을 뾰족하게 세우고 자잘한 버드키스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좀더 질척하게 혀가 섞이자 정혁의 허벅지가 필교의 센터를 지긋이 누르며 압박해왔다. “으으… 하아-, 헥헥헥, 야, 잠깐!” 정혁은 왜 그러냐는 듯 순진한 얼굴로 큰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필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여.. 여기서?” 살짝 감긴, 갈라지는 목소리로 필교가 말을 꺼냈다. 정혁은 충실한 애완견마냥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필교의 큰 손바닥이 정혁의 반직반질하고 잘 생긴 이마빡을 따악- 쳤다. “웃기고 있다, 새꺄. 미쳤냐? 너 야동좀 작작 보라고 내가 했어, 안 했어? 엉?! 애가 왠 이상한 것만 봐 와가지곤 세우고 덤벼드는데 미치겠네 진짜?”

‘아니!!!!!!!! 내가 언제 세우고 덤볐다고!???????’ 전적이 없는(?) 정혁은 억울했지만, 나중의 거사를 위해 참기로 했다. 둘은 서로 같은 생각(-이따가 집에가서 보자. 훗.)을 하며 다시금 키스에 열중했다. 아, 달다.






결국 연애로 인해 공부에 집중 할 수 없던 건 누구였는지 말하지 않아도 시험성적이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Posted by 기린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