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2009. 2. 26. 21:36

1. 5살 때 서초동에 살았는데 그 주변에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서초경찰서였는지, 서울경찰청이었는지, 강남경찰청이었는지 어쨌든간에 아주아주 큰 경찰서가 있고 그 앞에는 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다이아몬드무늬가 끊임없이 펼쳐친 쇠창살이 있었다. 가끔가다가 엄마손을 붙잡고 그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어느날은 우리집으로 경찰아저씨가 수갑과 함께 찾아와서 나를 잡아가려고했다. 나는 무서워서 엄마뒤에 숨었고 그 뒤의 기억은 없다. 그 외에도 혼자서 경찰서 앞을 배회하며 길을 잃고 한없이 작아지던 다섯살의 내가 기억난다.

2. 6살 때의 일이다. 병아리색의 옷이있었는데 옷의 collar는 뾰족뾰족하게 뱅 둘러진 콜라였고 그 끝에는 조그만 진주같은 구슬이 하나씩 달려있었다. 유치원에서 나는 무언가 친구들한테 뽐내고싶어했는데 그 구슬이달려있는 실이 약했던지 구슬은 여섯살의 내가 조금만 힘을주어도 톡톡 잘도 떨어지곤했다. 나는 그 구슬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탕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입에다가 집어넣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한껏 표정을 지어댔다. "아 맛있어!" 옆에던가 뒤에 앉아있던 친구는 나에게 구슬을 달라고 애원했고 나는 큰 선심이라도 쓰는것마냥 구슬을 하나 톡 떼어주었다. 그리고 구슬을 입에 넣고 그 아이는 목구멍으로 꼴깍 삼켰다. 그리고 숨이 막혔는지 켁켁대며 뒤로 넘어갔고 너무 놀란 선생님이 유치원과 같은층에 있던 병원에 그 아이를 데리고갔다. 영문을 모르는 나머지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이내 진정을 찾았지만 나는 한없이 의자안으로 움츠러들었다.

집에 와서 나는 그 사실을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왠지 머리속에서는 나쁜짓을 했으니까 경찰이 곧 알아내고 나를 잡으러 우리 집으로 찾아올것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지배했다. 그래서 밖에서 애들과 흙장난을 하다가도 깜짝깜짝 놀라서 집에 들어오고, 이리저리 망아지처럼 뛰어놀다가도 시무룩해져서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범인을 뒤에 실어서 잡아갈때만 쓴다는 그 경찰봉고차가 우리 아파트 동 앞 주차장안에 딱 눈에 들어오는거다. 나는 딱 직감했다. 올 때가 왔구나. 나를 잡아가려고 경찰아저씨들이 왓구나 하고 직감했다. 집에 안들어 갈 수는 없으니까 조심조심 쿵쾅대는 가슴으로 3층인 우리집으로 올라가는데 그런 나의 옆으로 완전무장한 경찰아저씨들이 내려가는거다. 보아하니 우리집에서 나온것같았다. 아저씨들은 나를 흘끔 보며 지나갔고 나는 아저씨들이 나를 지나쳐 내려가자마자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가 있었는데 평소랑 전혀 다를것이 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겁에 질려서 차마 경찰아저씨들이 우리집에 와서 무엇을 했는지 대체 왜 왔는지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3. 무서운 경찰아저씨에대한 기억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까지도 나를 간간히 괴롭혔다. 정확히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지 중학교 1학년때였는지는 모르겠자만, 이제는 그 기억이 나름 순화되었고 엄마에게 물어도 괜찮을것같은 기분이 스스로 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넌지시 물었다. "엄마, 근데 대체 그 때 경찰아저씨들이 우리집에 왜 온거야?" 
엄마가 말했다. "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런 일 없어 얘. 꿈꿨냐?"
뜨든.

4. 그 이후에 만 7세 이전의 아동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서 꿈을 현실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하던데, 그래서 나는 그런 기억중 하나라고 여기고있다. 그래도 아직도 그 때의 공포가 생생 한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분명히 대낮이었고 분명히 꿈도 아니었는데. 분명히 경찰아저씨들이었는데. 엄마기억을 의심해야 하는건지 내 기억을 의심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5. 왜 이렇게 경찰아저씨에 대한 트라우마가 큰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더니, 서너살때 할아버지 집에서 전화를 처음 손에 쥐고 112를 눌렀던 적이있었던거같다. 번호만 누르면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데 얼떨결에 무언가를 잘못눌렀는지 연결이 되어버린거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자 너무 놀라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112에 장난전화룰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던 나는 "112를 눌렀는데 누가 전화를 받았어!" 하고 울상으로 말했는데, 집에 계시던 어른이 (누군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할아버지였던듯) "넌 이제 큰일났다! 경찰아저씨가 와서 잡아가~"하면서 어린이를 단순히 놀리려고 한마디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상황이 재미있으셨던듯?) 그리고 나는 소파 한구석에 완전 팍 찌그러져서 덜덜 떨고있었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전화가 오는거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고 할아버지인가 삼촌이 전화를 받았는데 경찰서였다. 나는 어린나이에 112에 전화하면 여기 번호가 찍히는지는 전혀 몰랐지. 집에서는 어린아이가 장난을 쳐서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잉잉잉 울었던 기억도 나는것같은데?...........어두운과거군. 어쨌든 이게 트라우마의 시작이었던것  같다.
Posted by 기린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