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만 생각하고 담아뒀다가 나중에 잊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퍼져서 무언가를 쓰고 싶다거나 단어를 쥐어짤 머리상태가 안되지만 그래서 조금씩 쓰기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울한 날이었다. 다크룸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멍하니 있었는데 대런이 노크를 했다. 문을 닫아놨어도 그 사람의 짤그랑거리는 열쇠와 발자국 소리로 다 알 수 있다. 노크할 사람이 그 사람 밖에 없는것도 그렇지만. "do you want a cup of tea?" 매일매일 퇴근시간이 되고 자기 워크를 하기 전에 내 다크룸으로 와서 따뜻한 홍차를 한잔씩 만들어 주는게 너무 고마웠다. 룸서비스라면서 장난치는것도 너무 사랑스럽다. 늦은 오후에 학교에 사람들이 빠지고나면 가지는 둘 만의 티타임이다.
또 어떤날은 다크룸 구석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원하면 백룸에 있는 소파에 와서 하라고 말했다. 추운 다크룸 바닥에 앉아서 궁상떠는게 불쌍해보였나보다. 각자의 컵에서는 따뜻한 김이 나고, 그 사람은 바닥에서 자기 카메라 케이스를 만들고 나는 소파에 앉아서 바느질을 했다. 내 다크룸 커보드에 잔뜩 모아둔 쿠키들을 보고 나한테 쿠키몬스터라고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었다. 둘이 같이 있던 세시간 남짓동안 긴 침묵도 웃음도 전부 편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서로에 대하여 조금씩 더 알아가고. 신나하면서 유튜브에서 쿠키몬스터 동영상을 찾아서 틀어놓고 즐거워하던 7살짜리 같은 모습도 좋았다. 저녁이 깊어오면 서로의 짐을 챙기고 같이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걸어가고.
또 다른날은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대런 오피스에서 소파에 앉아 티와 쿠키만 냠냠하면서 대런이 워크하는걸 구경하고있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옆에 있으려고하는게 민망해서 i will leave now 빠빠이 하려는데 대런이 i know im boring but you can stay if you want라고 말해서 염치 없이 그래? 그럼 더 있지뭐 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im gonna leave in 15 minutes, would you walk with me to the busstop? 히히.. 그럼요 당연하죠. 같이 걸어가면 요새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하나도 안 느껴져 진짜로.
- 3일동안 크라이스트처치에 내려갔었다. 아마 그 시기가 그동안 있었던 문제에 대해 대런한테 다 털어놓고 서로 왠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한때였던 것 같다.(나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라고 믿고싶다) 내려간 첫 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내고 밖에 앉아서 대런이 보고싶다, 대런이 문자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바람일 뿐이지 이루어지지 않을거라는걸 너무 잘 알고있어서 더 서글퍼져 더더욱 울적해졌다.
조금 있다가 마음을 추스리고 동생과 함께 기분전환으로 몰이라도 한바퀴 돌자해서 가는 차안에서, 들고있던 핸드폰의 진동을 느끼고 확인해봤더니 대런한테 온 문자였다. 진짜 깜짝 놀라서 심장박동수가 마구 올라갔다. 덜덜 떨면서 확인해본 문자에는 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내가 생각났던지,
'크라이스트처치가 괜찮았으면 좋겠다, 잘 다녀와, 대런.'
이렇게 쓰여있었다. 내가 혼자서 징징댄마음이 전해진건지 텔레파시인지 한동안 문자를 주고 받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자가 와서 기쁘기도하고 고맙기도했다. 어리광을 잔뜩 피우고 싶은 마음에
its so miserable already, i miss your funny fish face
(최근 대런 작품이 물고기 사진들이라서 서로 생선닮았다고 장난치곤했다)라고 속마음이 무지 내비치는 답을 했더니 몇분있다가 곧 문자가 또 온다.
oh,snapper or puffer? Remember to smile,nod and say yes. C u later.
어떻게 이렇게 세심하고 다정할수있을까. 너무 달콤해서 눈물날뻔 한 그 문자를 정말 하루종일 볼 때 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몇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 언젠가부터 나를 crazy legs라고 부른다. 다크룸에 박혀있으면 뿅하고 나타나서 나를 놀래키면서 hey crazy legs! 하고는 웃는다. why am i crazy legs? 하니까 I dont know(특유의 억양으로.)
내가 병원에 갔다온 뒤 대런에게 모든걸 얘기하고 우울해할때에는 cheer up, sunshine. 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qaf에 나오는 썬샤인 저스틴이 생각나서 미소. 내가 썬샤인이라고 불리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그리고 또 어느날인가는 대낮부터 헤롱헤롱 다크룸에서 졸고있는 내게 "hey sweetie."
그 외 이상한 이름들로는 쿠키몬스터, cookette monsterena (이건 내가 문자로 dont work too hard& eat all the cookies mr monster 했더니, 답장으로 thanks,cookette monsterena가 왔다) piggy, piglet 기타등등..
아, 또 생각난건데, 하도 crazy legs라고 부르니까 나도 뭐라고 부를까 생각하다가 어느날 hey crazy legs! 하고 인사하는 대런한테 hi teddy tummy라고 받아쳐주었더니 뒤집어지면서 그거 말할라고 기다렸었구나! 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joanna newsom의 have one on me를 듣다가 daddy long legs가 귀에 확 박혔다. 아니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키다리아저씨 같이 나를 돌봐주는 대런, 가늘고 긴 팔다리에 배만 뽈록나온 그 거미. daddy long legs!
대런한테 뜬금없이
"you can be daddy long legs"했더니
웃다가 나한테 그랬다.
"then you can be mama short legs." 하여간 아저씨 개그센스란...
- 대런은 자기 오피스에서 무언갈 하고있었고 나는 그 바로 옆에 스캐너들이 있는 방에서 네게티브 스캔을 하고있었다. 두 방 사이에는 문이 있지만 열어놨기 때문에 서로 뭐 하는지 흘끔흘끔 곁눈질로 바로 보이는 상태였는데 스캔하는걸 기다리느라 지루하던 차에 문자가 왔다. D.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 거리더니 바로 옆에 있으면서 장난으로 문자를 한거다. yum cookie! 내가 문자를 보고 실실대다가 뭐라고 답장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핸드폰을 얌전히 내려놓고 가만히 있자 어떻게 하나 살피는 눈길이 바로 느껴진다. 아 귀여워 죽겠어.. 결국은 한참 있다가 cookie monster!하고 리플라이. 곧 옆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약에 취했는지 내 상상이었는지 빈속에 카페인을 과다섭취한 까닭인지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날도 나는 소파에서 빈둥대고 대런은 더니든에서 쇼가 있어서 그쪽으로 보내야할 자기 카메라들을 열심히 싸고있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양손을 허공에다가 놓고 얼마나 떨리는지 보면서 "my hands are shaky" 했는데 저쪽에 있던 대런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몸을 조금 숙이더니 내가 손을 내밀고있던 것과 같은 모양으로 내 두 손 앞에 자기 손을 가져왔다. 그래서 나는 뭐하는거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순간 내 손이 대런 손 안에 잡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라고 멍하기도 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겹쳐져있는 두쌍의 손들을 바라봤다. 짧다기엔 길고 한참이라기엔 모자란 시간을 그렇게 있다가 대런이 다시 손을 떼었을때는 서로의 얼굴에 조금 어색하고 미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손을 잡혔다-잡았다는 접촉의 묘한 들뜸에 신난 나는 작년에 대런이 나를 따라한답시고 너클 위에다가 그려놓은 얼굴들을 본 이후로 꼭 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했던 일을 해보기로한다. do you want smiley faces on your fingernails? 대런은 웃으면서 대답없이 손을 내밀었다. 아 손떨려. 그의 검지손가락을 잡고나서 왠지모를 부끄러움에 웃는얼굴 대신 :( 이 얼굴을 그렸더니 대런이 aww... 한다. 그리고 다른쪽 손을 내밀었다. 스마일 :) 잠깐씩이지만 마주닿는 손의 온기가 참 좋다.
나중에 같이 집에 걸어가다가 대런이 자기 손톱을 내밀면서 "이게 문득문득 보일때마다 읭??하게 돼"하면서 웃었다. 나도 내내 웃음만 나왔다.
- 아침 9시쯤, 대런의 오피스와 다크룸이 있는 2층에는 사람이 그닥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아침 일찍부터 다크룸에 들어가 가방을 놓고 화장실에 갔다가 나왔는데 화장실에 갈때는 닫혀있던 오피스 문이 돌아 올때는 열려있길래 이제 왔나 싶었는데 안에를 보니까 코뺴기도 안보여서 눈길만 흘끔주고 다시 나의 다크룸으로 돌아온 순간 깜짝 놀라서 움찔.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 내가 앉아있던 의자위에 대런이 앉아있었다. 나 놀래키는걸 즐기는 사람이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하고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자기 모습에 흠칫흠칫 놀라는 나를 보고 항상 재밌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sorry- 하곤한다. 이번에도 성공이다 아이고 웃겨 하는 표정의 대런이 손에 들고있던 책을 내 쪽으로 내민다. 이미 익숙한 표지다. 작년에 출판한 자신이 지난 20년동안 만든 카메라들을 기록해낸 대런의 아티스트북.
나는 가증스럽게도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what is it?"
"present!"
너무너무 행복해.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행복이 가득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내가 작년에 이 책을 샀다는걸 당신은 모르겠지. 이미 수십번도 더 뒤적거리고 당신이 생각날때마다 책을 펼쳐보고 좋아하는것도 모르겠지. 다크룸 안에서 내가 이 책을 본인한테 받았다는 기쁨에 허우적대다가 싸인을 받아야지! 하고 오피스로 다시 들어갔을때는 대런은 질문을 하러온 학생한테 대답을 해주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밖에서 여전히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린채로 이미 봤던 사진들과 글들을 훑어보고나서 그 아이가 가고나서 대런한테 책을 넘기면서 싸인을 해줘야지! 하고 말했다. 대런이 킥킥거리면서 펜 있냐고 물어봤다. 둘이 펜을 찾는다고 우왕자왕하다가 펜을 하나 찾아 앞 표지에다가 싸인을 하고, 날짜도 써줄까? 하고 오늘 몇일이지.. 하고 달력보고 날짜쓰고. 내가 책을 들고도 계속 헤벌쭉한 표정이니까 대런이 나를 보면서 웃었다. "it doesnt take much to make you happy" 당신이니까 할 수 있는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it doesnt 이라고 웃고 말았다.
그 날 저녁에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대런한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thank you for making my day happy, have a goodnite!x
친구랑 저녁 약속이 있는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딱히 답장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뭐라고 문자가 오진 않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다크룸에 멍하니 않아 책을 읽고있는데 대런이 쨘 하고 나타났다. 늘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해준다. 하이 하와유, 굳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바나나를 먹고있어서 좀 잠겼는데 have you got the flu? 하고 묻는다. 참으로 세심한 남자이셔라. 아니라고 웃으니까 oh, you have banana throat. 하하하. 그리고 장난스런 눈길을 마구 던져대더니
"I got your text last night,"
"oh.."
"did you get my text this morning?"
"no?"
무슨소리야! 난 문자 받은적 없는데?
"well, check check, now!"
방방 뜨는 일곱살 몸짓으로 얼렁 핸드폰 보라고 닥달하는 40대 아저씨. 오 갇, 너무 귀여워!
그래서 핸드폰을 봤는데 아무것도 온 게 없다. 안왔다고 진짜 보낸거 맞아?하고 물으니까 시무룩하게 freakin phone..한다. 자기 핸드폰이 문자 안 갈때가 있다고 그런다. oh..... 한 두시간 있다가, 그래서 텍스트에 뭐라고 했었는데?? 하고 물으니, I said that you are a little brat! 이랜다. 흥. 그래서 결국 아침에 뭐라고 문자를 한건지는 모르겠다. 궁금해 죽겠어. 왜 말안해주는건데?
방안에 똑같은 책 두권이 나란히 놓여있는걸 보면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노골노골해지기도 한다. 흐뭇하다.
근데.. 설마 대런이 내 블로그 알고있는거 아니겠지. 막 구글링하다가 찾아서 번역해서 읽어본다던가.. 아 나 그러면 정말 죽고싶을거야. 설마 설마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나진 않겠지??
얼마전에 신기해서 샀던 야광네일폴리쉬를 저녁에 아무 생각없이 바르고 잤는데 그 다음날 프로세스해야할 필름이 있다는걸 까맣게 잊었다. 다크룸에 들어가서 불을 껐는데 쌔까만 어둠속에서 빛나는 10개의 동그라미들. 난감하기 그지없고도 황당해서 웃음만 나와서 혼자 킬킬대다가 d를 찾아갔다.
i have glow-in-dark nails, are they gonna ruin the films?
박장대소하며 의자가 넘어갈듯이 웃던 d가 자기 책상위에서 까만 테이프 롤을 가지고 내가 서있던 곳으로 걸어왔다. 라이트 프루프 테이프. 마스킹 테이프 재질과 비슷한 그 테이프를 조금씩 찢어서 내 손톱 위에 하나씩 붙여줬다. 열손가락 전부 다. 그 사람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 하나하나가 닿았다가 떨어지는 느낌은 글로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냥 테이프 던져주면서 붙이라고 했을 수도 있는데 하나하나 붙여준것도 나로서는 좋았고, 붙이면서 오늘은 손톱에 스마일리 페이스들이 없네 하는 것도 좋았다.
스케치북에 내 손을 대고 아웃라인을 그린다음에 테이프를 곱게 떼어서 똑같이 붙였다. 이런 사소한것조차 쉽게 내버리질 못하겠다.
싸이애노타입엔 어떤 종이가 좋다고 그 포로세스를 많이 했던 내 친구가 그러더라 블라블라 설명을 해주던 대런이 종이 이름을 말해주고 이름이 어려워서 적으려고 하다가 스펠을 모르겠어서 손등과 펜을 내밀었다. 써달라고. 내 손을 잡고 위에 무언가를 끄적끄적 하던 대런 얼굴엔 장난꾸러기 표정이 가득. 결국 써 놓은 건 yoon poo.
역시나 우울했던 어느날 복도 저 쪽에서 대런이 보이길래 안좋은 표정따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팍 숙이고 지나가고 있는데 앞을 보고 가던 대런이 문소리를 듣고 내 쪽을 봤나보다. 반갑다는듯이 손을 까딱까딱대고 메롱메롱을 하다가 궁뎅이를 팡팡 치면서 딱 봐도 로우로우로우모드인 나를 웃게 하려는 행동들을 했다. 결국 내가 웃지 않으니까
"aww.. come on, cheer up! I will buy you chocolate!"
....내가 다섯살짜리 애도 아니고 초콜렛으로 나를 달래려 하다니! 하지만 너무나 귀여워서 웃음이 나와버렸지 뭐. 결국은 나 초콜렛 많아 너 초콜렛 먹고싶으면 내 거 먹어도 돼. 해서 다크룸에 쌓아둔 내 초콜렛 하나를 획득한 대런. 마음을 곱게 쓰면 초콜렛이 생겨요.
대런은 항상 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나를 웃게하려고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장난스러운 행동을 한다. 저녁에 같이 집에 걸어갈때면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어보고, 그 다음날 아침에 볼 때면 어제 저녁은 어땠냐고 물어보고, 주말에 서로를 보지 못한 월요일이면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본다. 항상 내 기분을 살피고 나를 배려해주는게 느껴져서 너무나 고맙다. 내 의사보다 더 의사같이 나를 치유해주는 느낌이다.
대런은 윗층 칼라다크룸에서 열심히 자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런이 보고싶었던 나는 사실 별로 필요도 없었지만 대런한테 말 붙일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사람 냉장고에 보관해두는 필름을 꺼내달라고 하기로 했다. 들뜬 마음으로 올라가서 다크룸 문을 노트하고 삼분만 기다리라는 소리에 앞에 있는 계단에 앉아서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끼이익 대는 문을 열고 나온 대런한테 '너 냉장고에 있는 내 필름좀 꺼내주세요' 했다. 계단 앞에 둘이 섰는데 대런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거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래서 계속 마주보다가 "what"했더니 피시식 웃으면서 앞을 보다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you were in my dream last night"
"oh."
그 말을 듣는순간 내 얼굴엔 헤벌레 웃음이 걸렸고요. 계속 꿈 얘기를 해주었는데, 꿈에서 나한테 언니가 있었다고한다(대런은 나한테 여동생이 있는걸 안다.) 나와 내 언니는 커다란 맨션같은데서 살았는데 그 맨션은 숲속에 있어서 주변에 토끼도 많고 새도 많았댄다. 그 언니와 내가 기르던 새가 있었는데 대런의 고양이가 그 새를 물어죽였대... 그러면서 껄껄껄. 나도 같이 껄껄껄.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웃음만 나오지 뭐. 도대체 나랑 언니가 사는 맨션인데 너랑 니 고양이는 왜 있었던거냐고, 'so what was your role in the dream?' 이걸 물어볼걸 그랬어. 꼭 궁금한거, 말했어야하는 건 지나고 나면 생각난다.
그런데 나도 이틀전에 당신 꿈 꿨어. 내 침대위에서 둘이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참 포근하고 따뜻하고 좋았지. 하지만 나도 당신 꿈 꿨다고 말하기는 부끄럽더라. unconscious던 conscious던 꿈에까지 내가 등장했다는 건 대런이 그 만큼 내 생각 많이 해준다는 좋은 뜻이겠거니 받아들이니까 기분이 매우 날아갈 듯 했다. 꿈을 꾼 것도 꾼거지만 나를 보고나서 꿈에 내가 나왔다고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해주는 것도 좋아. 좋은 것 투성이야.
아침, 플랫메이트이자 동기인 s가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어제 꿈에 대런이 나왔어!" 으하하. 꿈에서 대런은 밴드에 있었다고 한다. 콘서트는 아니었고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마구 흔들어 제꼈다고... s는 아무래도 그 전날 kill me! 하던 j한테 이층에서 철제쓰레기통을 던져버린 무지막지한 대런의 개드립이 너무 인상깊어서 꿈에 까지 나온것 같다고 했다. 미친듯이 웃어제끼며 얼렁 대런한테 달려가서 말해줘야지! 하는 나에게 쪽팔려죽겠다고 너한테 얘기하는게 아니었다는 s를 무시하고 행동에 바로 옮겼다.
쓸데없이 열심히 자기 오피스앞에 '대런 3층다크룸에 있음' 종이를 붙이고있는 대런앞에 서서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지었더니, 똑같은 표정을 하더니 얘 또 왜이래 하는 눈치다.
"쑤가 방금 진짜 웃긴얘기해줬어!"
"...나에관한거야?"
"응, 어제 쑤 꿈에 너 나왔대! you were in a band and you were rocking with your long hair!"
"cool!!"
막 웃던 대런이 한마디 더 붙인다.
"I like being in other people's dreams,"
"why?"
"'cause, it always means something."
"what does it mean?"
눈을 굴리며 잠깐 대답할까말까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좀 뜸을 들이다가
"it means that you are obssessed with that person!"
"oh, so soo is obssessed with you?!"
그래서 나는 짖궂게 받아칠까하다가 그만 두었다.
하고싶었던 말은, '그럼 너도 나한테 완전 빠진거야? 니 꿈에 나 나왔다며!'
방학이라 텅텅 빈 학교, 대런은 내가 있으면 꼭 닫아놨던 오피스 문을 열어논다. (안그러면 내가 하도 노크해대서 귀찮아서 그러는걸까?키키) 필름 프로세스도 프린트도 다 해서 심심해진 나는 쫄래쫄래 오피스로 들어가서 소파위에 자리를 잡았다.
"대런, i'm bored-----"
"uh-oh"
날 보면서 실실쪼개는 아저씨. 요새 수상한 아이컨택이 늘었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시선이 느껴지는 거 같아서 보면 나를 알수없는 표정으로 보고있는 대런의 두 눈이 보인다. 게다가 요새 개드립도 늘었다. 진짜 이건 개드립이라고밖에는.... 새벽 다섯시 쯤에 고양이가 이불속으로 기어들어와서 같이 스너글스너글하고 잤다는 대런말을 듣다가 컴퓨터에 고양이 사진 없냐고 물어봤다. 이리저리 파일을 찾더니 '너 이거 본적 있어?'하고 파일을 여는데 귀여운 꼬맹이보이 세명이 여름에 팬티차림으로 환하게 웃고있다. 손가락으로 맨 오른쪽에 개구진 표정으로 웃고있는 소년을 가르키면서 "it's me!" 으히히, 베이비포토. 가지런히 잘린 앞머리에 햇빛을 받아서 옅게 나온 머리색이 귀여웠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다섯살배기 대런. 아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1970년대.. 그 당시 우리 엄마아빠는 서로를 만나지도 않았고 나는 세상에 태어날 예정이 아예 없는 상태였겠구나 생각하니 참..
너는 베이비포토 어디있어 그러길래 크라이스트처치에 있어 하니까 that's handy 하면서 눈을 가볍게 흘긴다. 이번달 말에 내려갔다 올거니까 가져올게 하면서 '나는 어릴때도 못생긴베이비였고 지금도 그래' 하니까 예쁜애들이 그런소리 하는거 이해할수가 없어 하면서 입에 발린말을 한다. '그런말 해줄필요없거든!'하니까 '진짜거든, i mean it!' 해서 기분이 좀 좋았던 것도 사실.
결국은 고양이 사진은 보여주지도 않고, 대런 어릴 적 사진만 봤다는 얘기.
what does your parents mean to you, d?
it means that they had sex a long time ago, and i came out!
how are you otherwise?
good
promise?
yeah
are you all right?
yeah
are you sure?
yeah, im all right
i don't believe ya
아무도 없는 평화로운 오피스안에서 대런은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서 프리스비로 핀홀카메라를 만들고 있었고 나는 손에 대런이 타준 홍차를 쥐고 소파 팔걸이 위에 머리를 뉘이고있었다. 그냥 만사가 다 지루해서 시선을 딱히 어느곳에 두지않고 멍하게 있었는데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눈을 돌렸더니 대런이 나를 보고있다. 계속 조용하면 저렇게 한번씩 나를 빤히 들여다본다. 물끄러미 나를 보는 시선에 아무표정없이 눈을 맞추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해서 내가 먼저 웃었다. 대런은 조금 웃는가 싶더니 눈 계속 마주치면서 누가 먼저 웃는지 해볼까? 한다. 그래서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눈을 빠아아안히 맞추고있었다. 결국 둘 다 웃었으니 무효.
- 쿠키를 홍차에 찍어서 입에 넣자마자 거의 바로 대런이 크게 재채기를 했다. 입에 있던 흐물흐물하게 녹은 비스킷 조각들이 바닥에 놓아뒀던 카보드에 불시착했다. 나는 그 상황이 매우 웃겼지만 대런은 매우 민망했는지 '웁스 쏘리'를 연발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파편들을 주웠다. 꿍얼꿍얼 쓰레기통으로 비스킷 조각을 가져가면서 'eww..더러워'그러길래
'네 입에서 나온건데 뭘 그래?'
'그럼 니가 먹을래?'
'우웨에에엑'
- 콧물이 나온다며 계속 훌쩍훌쩍 대더니 갑자기 고개를 확 젖혀들었다. 내가 보면서 웃으니까 계속 코를 훌쩍훌쩍 들이키면서 '가끔은 이게 먹혀!' 한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내리고 카메라를 만들다가 결국은 안되겠다며 휴지를 가지러 화장실로 떠났다.
- 문이 열려있는 내 다크룸 앞에 서더니 마구 헝클어지고 엉켜있는 묶인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고 긁기 시작했다. 내가 뜨악한 얼굴로 보고있으니까 더 짖궂은 표정으로 더 신나게 머리를 긁는다... 아 더러운데 웃겨. 내가 '으아악'하면서 웃긴걸 감출수가 없어 마구 웃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기 다크룸에 들어가면서, '잘 웃는데?' 했다.
"타다!"
"타다!!"
"타~다~"
지나가며 오며가다가 폴짝 뛰어서 내 다크룸 앞에 dramatic entrance를 만든다. 괴상한 표정과 함께. 그날따라 드라마틱 엔트리에 심취하셨는지 한 여섯번은 오며가며 타다!를 연발했다. 나중에는 "타↘다↗"와 "타↘다→"의 차이점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갔다. 첫번 째는 입장할때고 두번째는 퇴장할때의 타다. 그리고 나서 또 타다!! 하면서 나타났는데 일부러 무시하고 내 일에 집중하는척 하자 또 한번 똑같이 타다!!!!!를 외치는 아저씨. 두번째마저 무시당하고 나자 시무룩한 목소리로.. "i'm not gonna make dramatic entries ever again.." 하면서 지나갔다.
"aww.."아쉬운 소리를 하자 금방 표정을 확 피더니
"it's ok, i have short memory so i will probably do it again" 히히히.
조금있다가 대런이 시위하듯 다시 내 다크룸 앞에 들어와서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있길래 "aww, what happened to your dramatic entrance?"하니까 조용히 다크룸을 다갔다가 폴짝 뛰어들면서 ta--da!!! 정말 만 40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아저씨다.
대런의 오피스에서 내 기린컵에다가 티백을 넣고 차를 탔는데, 보통 티백이 위에 동동 떠있어서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서 뺐는데 오늘따라 아래로 깊숙히 가라앉아있어서 뺴기가 곤란했다. 티스푼들을 보니 이상한 찌꺼기들이 붙어있는 더러운 것들 뿐이라
"티백 뭘로 빼? 티스푼이 너무 더러워"하면서 티스푼을 보여줬다.
"그걸로 빼도 안죽어"라고 했나? 어쨌든 그냥 쓰라는 식으로 말해서 "eww, 티백 안빼고 그냥 마실래" 그랬더니 티스푼을 들더니 숟가락의 동그란 부분 말고 반대쪽 손잡이를 보여주더니
"이쪽으로 빼!"
"싫어"
"왜?? 깨끗해!" 하면서 그 숟가락을 쪽쪽 빨았다. 자기도 얼척이 없는지 피식거리더니,
"아, 이상한 병균에 감염되서 내일 학교 못 올지도 몰라~"
그리고 티백을 담궈둔 홍차가 꽤 많이 남았는데 나가야할 일이 생겼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다크룸에 냅두고 갔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파인애플럼프를 대런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다가 대런이 차가운 홍차에 파인애플 럼프를 넣었다. 보복으로 대런 커피에다가 파인애플 럼프를 넣으려고 뚜껑을 여는데 덜렁거리는 내가 커피를 쏟는 사고를 저질렀다.. 엎질러진 커피를 닦고 뚜껑을 살포시 컵 위에 올려놓고 파인애플럼프도 그 위에 얌전히 놓았다.
"커피에 넣진 않을게..."
"왜? 넣어도 괜찮은데.."
그리고 얼마 후, 아직도 파인애플 럼프가 동동 떠나디고 우울한 모습의 티백은 쫄딱 가라앉은 식은 홍차를 처리해야겠다 싶어 손가락을 넣어 차가운 티백을 꺼냈다. 장난끼가 발동해 "대런 do you want morning tea?" 하면서 흠뻑 젖은 차가운 티백을 대런 앞으로 들이 밀었는데 대런이 입을 아아-- 하고 벌렸다. 넣을것처럼 하다가 그냥 버리려고 뒤돌아서는데 "aw, i would have done it"하는 말에 다시 뒤돌아 티백을 가져갔다. 대런이 다시 입을 벌렸다. 입에 티백을 물려주었더니, 소가 여물 씹는 모양새로 우물우물 쭉쭉 티백을 빨아마셨다. 아..... 웃겨죽을거같아 미칠것같아!!!!
기구한 운명의 티백은 몇 초 후에 '퉤'하고 다크룸 싱크대로 뱉어내어졌다.
그리고 홍차 위에 떠다니던 대런이 집어넣은 파인애플 럼프는 결국 본인이 직접 건져내어 먹었다..